의무방어전이었지만, 제주니까 논외로 치자. 이 섬은 부담감이 있어도 갈 수 있는, 가야만 하는 곳이니까.
구좌의 숙소는 한 가족이 나란히 누워 자기엔 약간은 좁은 곳이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방 한 칸에 네 사람. 부부와 아이 두 명이 나란히 누워 자던 어느 밤들이 있었을 테다. 거의 쓰러져가는 판자집에서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겨울 바람에 코가 서늘하던 어느 밤들도 있었을 거다. 옆 방에도 그 옆 방에도 사람이 없는 게스트하우스의 가을은 그런 이야기를 하기 좋은 계절이었다.
성산 일출봉에도, 천지연 폭포에도 천제연 폭포에도 중국인들이 너무 많았다. 명절이 겹쳤다고 했다. 그 사람들의 언어는 어떻게 그리도 소음을 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게 된 걸까. 다행히 관광객 대부분은 돈을 쓰고 등산까지 하진 않아서, 영실의 계단은 조근조근했다. 구름이 머리 위로 지나가며 비를 뿌리는 모습. 갑자기 빤해진 하늘. 백록담까지 갈 수 있는 코스는 아니었지만 그 전까지로 충분했던 것 같다. 산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전에 걸어보았던 길이라는 게 생각났다. 잃어버렸던 기억.
잃어버렸다는 걸 알게 된 기억. 과거의 시간은 도처에서 나를 바라본다. 편의점에서 산 카스레몬. 리조트 옆의 강정마을과 공사(파괴)장. 협재의 도로, 산방산 레이지박스. 바이킹은 여전히 드문드문 잘 돌아가고 용머리해안은 바람이 심해 출입통제였다. 이전의 느낌들. 같은 곳을 다시 밟으며, 떠올리며 동시에 지워나가는 일.
웃음을 과장하면 웃지 못하게 된다. 처음의 너는 대부분 즐겁고 무엇에든 - 배우이건 야구이건 술이건 - 빠져있었지만 행복해보이진 않았다. 무수히 많았던 즐거운 글 마지막에 남은 점의 느낌을 아직 기억한다. 그렇지만, 때때로 이미 부서진 유리처럼 위태로울 때에도, 바닥에 널부러진 적은 없었다.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그늘 아래 있었지만 얼어죽은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았던 동안에는. 그것이 장녀로서의 의무인지 가족에게 받은 사랑인지는 모르지만 너에게는 우울함을 버티고 삶을 이어가는 빛이, 힘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손을 잡거나 옆얼굴을 볼 때와 같은 눈으로 너의 글을 지켜봤었다.
렌트한 차 범퍼 아래쪽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생겼는지 확인을 못했는지는 모른다. 보험을 안 들고 빌린 탓에 셈을 해 보니 그냥 반납했다가는 꽤 큰 돈을 물어주어야 하는 상황. 주변을 수소문해서 차를 맡기고 동네의 목욕탕으로 갔다. 물방울이 무늬로 맺혀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 천장. 팔과 등을 짙게 그을린 아이들이 냉탕으로 들어가기 전 까르르 웃으며 누가 먼저 들어가나 가위바위보를 한다. 맨 앞에 있던 아이가 계곡으로 입수하듯 뛰어서 몸을 둥글게 말고 찬물로 들어간다.
천장의 물방울을 보며, 아이들을 보며 상상해 본다. 서귀포의 한 목욕탕에서 같은 천장을 10년, 또는 19년 동안 바라볼 이의 생은 어떤 차림을 하고 있을까. 팔과 등을 그을린 제주의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
한때,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가 있었다. 아빠와 셋이, 같은 목욕탕 천장을 10년이나 보아 온 사이였다. 언젠가부터 친구라 여겼던 이가 나를 종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인간이 군대에 가기 전에서야, 나와 아빠 사이가 그 인간에게 열등감의, 폭력의 씨앗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친구같은 부자사이" 라니. 주소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나는, 그 시기의 나는 힘도 없으면서 집에서 멀어지려고 허둥대던 천둥벌거숭이었다.
미주알고주알 말을 하지 않았으니 그 인간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99를 가지고 있으면서 1이 모자라다고, 99가 모자란 이가 비난한 것일 수도 있다. 변호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예전에 내가 받은 핍박을 정당하게 만들지는 않으니. 내가 생애 최초로 버렸고, 한때 찢어서 죽이고 싶었던, 지금도 나와 집이 화목하게 잘 살 것으로 알고 있을 누군가에 대해, 지금은 딱히 미움도 아쉬움도 없다. 둘 다, 각자의 모순과 모난 마음이 있었을 뿐. 어디서 무얼 하건, 잘 살아가길 바란다.
셋째 날인가는 협재 인근의 고기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경상도 말투를 쓰는 아주머니 한 분의, 울릉도에서 제주로 와 살게 되었다는 말을 진술처럼 듣는 일. 몸국을 먹으러 찾아간 음식점에서 주인 아저씨와 아빠가 음식에서 색소폰이며 정치인과 회사와 자식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걸 바라보는 일. 혼자 왔으면 묻지 않고 공감대가 없어 인연이 없었을 이야기들. 풍경을 차분하게 볼 기회 없이 가서 사진찍고 이동하는 걸로 4박 5일을 다 채웠지만 억울하진 않았던 건 의외의 선물 때문이었다.